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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아스테카 제국

14세기 중반부터 16세기 에스파냐 정복자에 의해 멸망당하기까지 현재의 멕시코시티에서 흥성했다.

역사

아스테카는 1250년경부터 1521년까지 멕시코의 분지에서 꽃을 피웠다. 이 문명을 건설한 주민은 12세기 초반에 멕시코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으며 나우아틀어를 사용했다. 이 종족을 가리켜 흔히 아스테카인이라 한다. 아스테카라는 말은 이들의 설화에 등장하는 원초적인 고향 아스틀란에서 유래했으며 아스틀란의 출신이라는 뜻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스테카인은 아스테카라는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스스로를 메시카인이라 불렀다. 에스파냐인도 이곳 원주민들을 메시카인이라 불렀다. 메시카의 의미는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통상 아스테카인이 숭배하던 전쟁의 신 우이칠로포츠틀리의 또 다른 이름 메시틀리에서 파생된 말이며 그 뜻은 우이칠로포츠틀리가 있는 곳이다. 

 

아스테카인이 살던 테노치티틀란은 호수 가운데 있는 작은 섬이었다. 이 섬의 면적은 최소 여의도 면적의 4~5배 정도 되는 섬으로 인구는 15만에서 20만 정도였다. 이 호수는 화산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강물을 막아서 생겨난 것으로 겉보기에는 하나의 호수 같지만 사실은 5개의 호수가 연결되어 있다. 아스테카인이 살던 섬은 중아에 있는 테스코코 호수에 있었다. 이 호수를 비롯하여 북쪽의 두 호수는 짠물이고 남쪽의 두 호수는 민물이다. 짠물에서는 농수산업이 불가했고 우기에는 빈번히 홍수가 범람했다. 이러한 악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아스테카의 왕은 대대로 치수사업을 추진했다. 먼저 6~8km에 달하는 둑길을 여럿 건설하여 섬과 호수 주변의 땅을 연결했다. 

둑길 가운데 한 곳에는 길 중앙에 수로를 설치했다. 이렇게 끌어온 민물은 식수와 생활수로 사용했다 1449년에는 테스코코 호수 중간에 나무와 돌로 16km에 달하는 제방을 쌓아 홍수로부터 섬을 보호했다. 

 

흔히 아스테카라고 부르는 테노치티틀란은 그 자체로 국가였다. 당시 중미 지역에는 이러한 도시국가가 많았는데 호수 주변에만 40여개가 있었다고 한다. 도시국가의 크기는 도심과 주변부를 포함해서 반경 10km 남짓했다. 이러한 도시국가 테노치티틀란이 1428년 호수 주변의 도시국가 테스코코 및 틀라코판과 삼각동맹을 맺었고 본격적으로 전쟁을 벌여 멕시코 분지와 그 너머의 수많은 도시국가를 굴복시킴으로써 이른바 아스테카 제국으로 성장했다. 

 

클라우제비츠의 정의에 따르면 제국은 영토를 확장하고 내정에 간여하며 상비군을 유지하고 정복지에 군사를 주둔시켜야 한다. 지금까지 거의 대대분의 제국이 그러했다. 하지만, 아스테카에는 상비군이 없었으며 정복지에 주둔군을 배치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서구적인 의미의 제국으로 보기 어렵다. 사실 아스테카의 정복과 통치방식은 독특하다. 전쟁에서 승리해도 정복지를 직접 통치하지 않았다. 왕을 교체하거나 내정을 간섭하는 일도 없었다. 기존의 권력을 유지시켰다. 

 

대신 옥수수, 새의 깃털, 카카오 등 생필품에서 사치품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공물을 정기적으로 받았다. 공물을 제때 바치지 않으면 관리를 파견하여 독촉했다. 그런데도 거부하면 최후의 수단으로 군대를 동원했다. 이때도 공물을 받아내는 것이 우선이지 권력을 교체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런 이유로 일부는 제국보다는 정치 연합체, 헤게모니, 거대국가, 느슨한 제국, 군사력에 바탕을 둔 상업경제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아스테카와 피정복 도시국가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정치 연합체가 가장 맞는 표현이겠지만 관례에 따라 아스테카 제국이라 일컫는다.

문화

아스테카인은 기본적으로 수렵생활을 했기에 문화수준이 매우 낮았다. 그들 주변의 여러 문화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그들이 국가형성을 이룬 뒤에 만들어낸 종교체계나 천문 역법 문학등은 주로 테스코코를 통해 받아들인 톨택계 문화에 바탕을 두었다. 그들의 우주관은 툴라족의 톨텍문명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세계를 네 부분의 수평으로 구분하여 수직면으로는 9층씩의 천상세계와 지하세계를 설정하였다. 하늘은 대지를 둘러싼 물과 함께 일종의 통 모양의 천장을 형성하고 거기에는 커다란 대들보에 의해 서로 격리된 궤도가 층을 이루고 달 별 혜성등이 지나다닌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위에는 신들의 영역이 있고 다시 그 위에는 이원성의 장소인 오메요칸이 위치하여 거기에 이원신이 오메테오톨이 최고신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우주관은 아즈테카의 사회생활을 전면적으로 규제하고 있었다. 즉 오메테오톨은 많은 신들을 자식으로 거느리는데 그들은 대지 공기 물 불 등 4요소에 맞먹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마다 태양이 되어 우주의 네 구역에서 행동을 일으켜 세계에 변화와 갈등과 진화를 가져다 주며 탄생과 사멸의 주기를 되풀이하고 역사의 각 시대를 구성한다고 생각하였다. 아즈테카인은 세상은 4번의 창조 활동이 있었고 각 세상마다 그 세상을 지키는 태양이 있었으며 모두 명망하고 자신들은 5번째 태양신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믿었다. 아스테카인은 자기들이 지진을 나타내는 제 5의 태양신의 세상에서 살고 있으며 이 세계가 멸망하기 전에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대규모적인 인신공양을 행했다. 즉 세계의 본질인 허무와 암흑과 싸우는 태양신을 위해 피와 심장을 바쳐 활력을 주어 영원히 아스테카 시대를 지속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인신공양을 위해 여러 대신전을 수도에 세웠고 엄격하게 지키고 있는 달력에 의해 각종 의식을 행하였다. 또한 산 제물을 바치기 위해 강대한 군사조직을 조직하여 전쟁으로 정복한 지역의 사람을 포로로 잡아다가 살아있는 사람의 가슴을 절개하여 심장을 제물로 바쳤다. 1년에 2만명의 포로를 제물로 바쳤으며 이렇게 실시한 공포정치는 이들에게 주요한 지배수단이 되었다. 

정치

사회조직면에서 아즈테카는 카르프리라는 공동체 조직을 단위로 하는 계급사회를 만들었다. 따라서 공동체적인 토지 보유의 형태가 보이는 한편 그 도시생활에 있어서는 사회 계층과 직능에 따라 거주구역의 행정조직이 이루어져 있고 자치적인 경찰과 사법 조직도 발달해 있었던 것으로 본다. 직업도 다양하였는데 그 중 주목할 만한 것은 포추테카라고 불리는 상인층이었다. 그들은 토라테로르코 초르라 그밖의 도시에서 큰 시장을 개설하였고 그들 집단은 중앙아메리카 지방을 널리 여행하며 교역을 행했다. 또한 귀족 평민의 교육기관도 발달해 있었다. 

 

하지만 문화적으로 인신공양을 바치고 공물을 정복한 주변국으로부터 받음으로써 경제를 유지하였기에 공포정치를 기반으로 국가를 다스리게 되었고 이는 훗날 1520년 에스파냐 정복자들이 반 아즈테카 원주민들과 동맹을 하게 되는 원인으로서 작용하게 되고 결국엔 아즈테카 제국은 멸망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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