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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오스만 투르크(오스만 제국)

오스만 제국(1299~1922)은 13세기 말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등장하였으며 다민족·다종교 국가로서,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의 3개 대륙에 걸친 광대한 영토를 통치했다. 제국이 태동하던 시기의 아나톨리아 반도 일대는 군소국들이 분할하여 통치하였으며 그 이전에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 비잔티움 제국의 영향권에 있었다. 이 지역은 민족 간의 분쟁이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11세기 경 북쪽 튀르크 인들이 아나톨리아 발도로 대거 이주해오면서 이 지역의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튀르크 족은 유목민이었으며 이들은 토착세력인 이슬람인들과 갈등 속에서 자신들의 영역과 영향력을 점차 넓혀나갔으며 종교적으로는 이슬람교에 동화되었다. 그리고 비잔티움 제국이 쇠퇴하자 튀르크인들은 토착세력과 연합하여 유럽의 동부지역까지 진출하였다. 하지만 십자군의 등장으로 유럽으로 진출이 좌절되었다.

13세기에 들어 몽골제국이 등장하고 이 때문에 북쪽의 튀르크인들의 집단이동이 가속화되어 인구가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튀르크인들이 만든 여러 소국중에서 오스만 1세가 거느린 유목민 집단이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하면서 점자 강대한 국가로 성장했다. 다양한 종교를 가진 민족들이 오스만의 지배권으로 통합되었다. 오스만 왕조는 점차 영토를 넓혀갔으며 술탄 메흐메드 2세가 통치한 15세기에는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후 16세기에 들어 술탄 쉴레이만이 유럽과의 전쟁에서 연승하며 16~17세기에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를 누렸다. 수도는 오늘날스탄불로 알려진 콘스탄티노플이었으며, 튀르크계의 오스만 왕조가 제국을 통치하였다. 전성기 제국의 영토는 동서로는 카스피해와르시안만 연안에서부터 대서양 연안의 지브롤터 해협까지, 남북으로는 아프리카의 소말리아에서 유럽의 오스트리아 경계에 이르렀다.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동서 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문화적으로도 비잔틴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융합된 다원적인 성격을 띠었다.

 

13세기 말, 셀주크튀르크가 몰락하며 소아시아(아나톨리아)의 튀르크계 민족들은 크고 작은 공국들로 분열되었다. 그 중 하나가 서부 아나톨리아에 근거를 두고 있던 에르튀그룰(Ertuğrul)의 아들 오스만 1세(Osman I : 1258~1326)가 이끄는 왕국으로, 전승에 따르면 이 왕국은 약 400기 이상의 기병을 보유한 강력한 군사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이들은 본래 셀주크튀르크에 고용된 용병 집단이었으나, 1281년 부친 에르튀그룰의 사망으로 오스만 1세가 수장이 된 이후 정치적 세력을 키워 1299년 셀주크왕조가 멸명하자 제국의 주권을 넘겨받았다. 이것이 오스만 제국의 시작이었으며, 제국의 이름은 오스만 1세의 이름을 따른 것이다.

오스만1세는 재임 기간 중 비잔틴 제국과의 경계까지 영토를 확장했으며, 부르사를 공략하여 아나톨리아 전역을 통일한 뒤(1326년), 수도를 부르사로 옮겼다. 또한 제국의 행정적·정치적 기반을 정비하고, 밀레(Millet)로 알려진 종교적·민족적 소수집단의 자치구를 설정하여 효율적인 국정을 가능하게 했다. 당시 만들어진 제도는 약 4세기 동안 큰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될 정도로 체계적이었다.

오스만 1세 사후에도 제국은 영토를 계속 확장했다. 아드리아노플(에디르네)을 점령하고(1362년),소보 전투(Battle of Kosovo)에서 발칸반도 여러 나라의 동맹군을 무찔렀으며(1389), 나아가서 니코폴리스에서 유럽 여러 나라의 십자군을 격파(1396년)하여, 발칸반도의 대부분을 병합했다. 그러나 서진(西)하여 온 티무르군에게 앙카라에서 패하여(1402), 술탄 바예지드 1세(Bayezid I: 재위 1389~1402)가 티무르군에 포로로 잡혀 그 진격이 한때 멈추었다. 1405년 티무르가 사망하자 술탄 바예지드 1세의 아들 중 하나인 메흐메드 1세(Mehmed I: 재위 1413~1421)가 다시 오스만 제국의 주권을 회복했으며, 그의 손자 메흐메드 2세(Mehmed II : 재위 1444~1446, 1451~1481)때에 콘스탄티노플 공략에 성공함으로써 비잔티움제국(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수도를 아드리아노플에서 이곳으로 이전하였다(1453. 5. 29).

대부분의 학자들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1453년부터 개혁 제국의 영토 확장이 정체기에 이르는 1699년까지를 전성기로 보고 있다. 이 시기에는 정복 활동이 계속되어, 북아프리카 전역과 동유럽 일부를 영토화했으며, 군사 혁신을 통해 강력한 해군을 구축했다. 또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중개무역으로 경제적 번영을 누렸으며, 문화적 황금기를 맞이했다. 특히  술탄 셀림 1세(Selim I : 재위 1512~1520)에는 페르시아와 이집트 및 아랍 지역을 점령하여 제국의 영토가 동쪽과 남동쪽으로 크게 확장되었고, 홍해로 해군력이 진출하게 되었다. 특히 이집트의 맘룩 왕조를 멸망시킨 셀림 1세는 아바스 왕조의 마지막 칼리프로부터 칼리프 칭호를 이양받아 이슬람교의 종주권을 장악했으며, 술탄 칭호와 칼리프 칭호를 함께 사용함으로서, 술탄 칼리프제를 확립했다(1517년).

술탄 술레이만 1세 (Suleiman I : 재위 1520~1566)의 재위 기간에는 해군력을 통한 영토확장이 주를 이루었다.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오스만 제국은 오늘날 북아프리카의 튀니지, 알제리 지역을 점령했으며, 1543년에는 신성로마제국의 니스(Nice)를 점령하기도 했다. 또한 북서쪽으로도 진출하여, 한때 오스트리아의 빈까지 공략하기도 했으며(1529년), 그 후에도 남동부와 중부 유럽을 통치하던 합스부르크 왕가와 오랫동안 대치 상태에 있었다. 오스만 제국은 당시 합스부르크 왕가와 적대적이던 프랑스의 부르봉 와 한때 동맹을 맺기도 했는데, 이는 군사적인 이유도 있었으나, 경제적 성격도 띠고 있었다. 오스만 제국은 프랑스에 제국 내에서 관세 없이 자유로운 무역 활동을 하도록 허락했으며, 친프랑스 세력이었던 영국, 네덜란드 등지의 상인들도 활발한 무역활동을 벌이곤 했다. 이 시기에 국내적으로는 군사적 봉건제에 입각한 국가체제를 확립하고, 법률·학예·건축·공예 등 각 분야에 걸쳐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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